무려 신구, 박근형, 김학철, 조달환, 이시목 배우가 출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는 서울에서의 공연기간이 불과 4월 26일부터 5월 5일까지 밖에 되질 않아서 당연하게도 예매 첫날에 이미 전석 매진이 되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엔 꼭 봐야할 거 같다는 느낌이 넘 강하게 들어서 매일 인터파크 티켓 사이트 & 앱을 들락거리면서 또 혹시 결제할 때 버벅 거려서 표를 놓칠까 싶어서 결제는 어떤 걸로 하는 게 빠를 지 미리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준비를 하다가
드디어! 4월 30일 밤 11시에 R석을, 그것도 가운데 자리를, 그것도 앞에서 세번째 줄에! 게다가 복도 쪽과 가까운 자리의 취소표를 기적적으로 티케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으허헝!!! ㅎㅎㅎㅎㅎㅎ 머선 일이고!
공연 2일 전에 기적적으로 예매한 내 자리 좀 봐요. 여러분~ ㅎㅎㅎㅎㅎ 선예매자의 취소로 인해 저에게 온 행운이 부디 공연 내내 별 탈없이(기침이나 화장실 트러블 없이) 잘 관람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면 좋겠습니다. 흙흙흙 얼마만의 국립극장 구경인가요. 어릴 적에 발레학원 원장님 공연보러 갈 때 처음 가봤던 걸로 기억하는 곳이어서 감회가 또 새롭구만요. 크흡!
공연시간이 평일 저녁 7시 30분이라서 근무지에서 2시간 먼저 나올 수 있는 시간제 연차 사용을 허락 받고 일찍 출발해서 간단히 저녁 먹으려는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드디어 5월 2일!
그래서~ 초딩 때부터 온갖 책을 많이 읽고 학창시절 국어 점수가 제일 높았으며 고등학생 때는 문예창작부 부장도 했던 저의 감상평은요~
ㅋㅎㅎㅎㅎㅎㅎ 딱 위의 고양이 같은 상태였어요. 너무 심오합디다! 고도는 억압을 하는 종류의 엄격한 신 혹은 기약없는 희망(이라 쓰고 사실은 고문이라고 읽어야 할),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 하게 하는 월급, 사람을 자발적이 아닌 수동적으로 만드는 온갖 외부의 압력이며 디디와 고고는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원초아인가도 얼핏 떠오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는데 집에 오는 길에 해석을 찾아보니 아직까지도 "이게 맞다."는 해석본 같은 게 없어서 또 대충격이었습니다. 게다가 작가가 자기 책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왜 카인과 아벨이 나오고 예수님 옆에 두 사람 중 한 명만 구원 받았다는 얘기를 한 건가요~
작가가 신을 찾지 말라고 한 이유는 어쩌면 [고도를 기다리며]가 전쟁 때 시골에 숨어 있으면서 쓴 책이라고 하는 게 힌트가 될 수 있을 거 같고요. 처음 공연을 했을 당시 일반인과 문학관련인 모두 이해를 못 해서 혹평을 했지만 교도소의 죄수들은 엄청나게 열광하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했다고 해요.
위에 쓴 글 중에 사람을 자발적이 아닌 수동적으로 만드는 온갖 외부의 압력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바로 며칠 전에 생각한 게 있었는데 사람이 생각하길 멈추면 남이 시키는대로 살아야 한다. 고통스러운 자아성찰 없이 본능에 집중하며 남이 시키는 길의 끝으로 가게 되면 여자는 창부가 되고 남자는 강도가 돼서 남을 해치다가 종국에는 자기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쉽게 얻는 건 쉽게 잃는 법이에요.
나 갈래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맞다...
감상평 잠시 반말체.
목줄에 매인 채 지주의 짐을 들어주며 뼈다귀라도 주워 먹는 럭키의 삶이 아닌, 자유는 갖고 있지만 일할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고도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추운 밤이 되면 잘 곳도 없고 밥도 굶어야 하는 고고와 디디. 럭키는 생각을 해도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할 옳은 방향으로 생각을 하지 못 하고 동시에 너무 많은 분야에 대해 생각하며 연관성도 엉망인게 마치 빅데이터만 있는 인간 같다. 그러다 1막 마지막에 지주가 했던 대사처럼 하루 아침에 둘의 처지가 바뀔 수도 있다는 암시 뒤에 2막에서 지주는 눈이 멀고 럭키는 말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걸 보며 난 럭키를 의심했다. 럭키는 정말 말을 못 하게 된 것일까. 지주는 말을 못 하는 럭키가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불안하지만 럭키가 가는 곳으로만 가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지. 럭키가 그런 상황에서 주인을 데리고 다니는 게 또 대단했지만 뭐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주인이 평소 럭키에게 내리던 평가보다는 좀 더 고단수였던 듯 하다. 주인이지만 주도권이 온전하지 않은 불안한 주인, 주도권이 없지만 주도권이 있는 짐꾼. 하루 아침에 뒤집힌 게 맞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목줄만 목줄일까. 오지 않는 고도에게 스스로 옭아매어져 있는 고고와 디디는 진정 자유로운 것인가?
다른 배우들이야 원래 대단한 줄 알았지만 극 중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연관성이 없는 긴 대사를 외운 조달환님의 연기가 참 대단했고요.
인생에 한 번은 볼만한 연극이지만 그러나 두 번은 못 보겠어요. ㅎㅎㅎㅎㅎㅎ
평일 공연이었기 때문에 집에 오니 밤 11시였고요. 담날 출근해서 넘넘 졸렸습니다만 어쩐지 삶이 약간 희망적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고고와 디디를 볼 정도의 사람이라면 최소한 그들보다 가진 게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그래도 그들보다 좀 더 낫구나하고 안도도 하고 동시에 매어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삶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해질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신구님과 박근형님이 주연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한 번은 꼭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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